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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토마스만 - 시민과 예술가 사이

by 공자- 2023.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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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예술가 사이

 

 

토마스만의 단편들에 대해 리뷰하겠다.

 

토니오 크뢰거. 마리오와 마술사. 타락. 행복에의 의지. 키 작은 프리데만 씨

 

어릿광대. 트리스탄 . 베니스에서의 죽음 등이다.

 

전부 읽어보았는데 작품의 기조가 전부 비슷하니 이 작가를 알고 싶으면 뭘 읽어도 괜찮을 듯 싶다.

 

여러가지 키워드가 있겠지만 토마스만의 소설의 핵심을 두 가지 정도로 추려보고 싶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열망. 예술가와 소시민 사이에서의 방황.

 

먼저 토마스만의 소설에는 항상 모종의 아름다운 여성들이 등장한다.

 

여성이나 혹은 미소년일 때도 있다.

 

아무튼 그 여성들은 주인공에게 일종의 개안(開眼)을 선사한다.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들은 정말 더없이 비굴한 태도로 그녀들에게 굴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사회상을 고려해보면 대략 이런 이미지?

 

 

특히 작가의 가장 자전적인 글일거라 생각되는 토니오 크뢰거가 그랬고, 트리스탄에서의 슈피넬이 그렇다.

 

베니스의 죽음만 남자아이에 대한 사랑일 뿐 나머지는 다 비슷한 구조다.

 

사실 글이라는 것은 어떻게 쓰던 결국 작가의 삶이 드러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적어도 나는 토마스 만이 어린 시절 인기가 많은 아이는 아니었으며,

 

지극히 소심하고 신경이 가느다란 연약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예술을 접할 때 작가의 일대기나 해석은 보지 않는다. 그러니 실제로 작가가 알파메일에 인싸남이었다면...

완벽한 캐릭터들을 조형했음을 인정하겠다. ㅆㅇㅈ)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독일 사람이라고 하면 딱딱한 이미지가 곧바로 연상된다.

 

그렇게 남자다움을 강요 받는 사회에서 몰래 시를 쓰고 산문을 쓴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왠지 독일 남자 하면 떠오르는 남성적인 이미지

 

하지만 은밀하게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만 품고 있다가 마침내 성공하는 식의 구태의연한 이야기는 없다.

 

주인공들은 높은 지위나 권력, 혹은 재력을 가지게 되어도 자신이 그 아름다움에 어울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아마 토마스만이 작품 내내 얘기하던 예술가적 기질, 어릿광대적 기질 때문일 것이다.

 

밑의 한 구절은 정말이지 내가 공감하는 구절이고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용해본다.

 

 

 

 

<정말이지 나로 하여금 모든 예술성 속에서, 모든 비상한 것과 모든 천재성 속에서 무엇인가 매우 모호한 것, 매우 불명예스러운 것, 매우 의심스러운 것을 알아차리도록 해주는 것은 바로 이 시민적 양심이며, 나라는 인간의 내부를 단순한 것, 진심인 것, 유쾌하고 정상적인 것, 비천재적인 것, 단정한 것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는 것도 바로 이 시민적 양심인 것입니다.

나는 두 세계 사이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세계에도 안주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약간 견디기가 어렵지요. 당신들 예술가들은 나를 시민이라고 부르고, 또 시민들은 나를 체포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나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해 본적이 있다.

 

예술이라는 것의 본질은 예술 자체의 예술성을 좇으면서도 동시에 공감, 그러니까 개개인의 공감과 더불어 시대적 공감을 받는 것이 소명일 것이다.

 

아마 내 말에 반대하는 지독한 유미주의자들 역시 이러한 소명이 완전히 없다고 할 수는 없을것이다.

 

 

토마스 만은 예술가로서 느끼는 모호한 것들. 즉 그의 말에 따르자면 형식이 아닌 것들에 대한 사유를 글로 풀어내면서도 결국 소시민 적인 삶과 융합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여긴다.

 

그의 많은 소설들에서 항상 예술가들은 무의식중에, 은연중에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경멸하고 혐오하는 바탕이 어느 정도 깔려있다.

 

그럼에도 밝게 웃고, 소매를 단정히 집어 올리고, 시덥잖은 얘기를 나누는 그런 삶에 대한 동경 또한 내포하고 있다.

 

 

 

작가의 이런 태도는 회화로 치자면 아마 예전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키치적인 것도 동경한다는 말과 다름 없다.

 

그의 글에 대한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예술과 글을 숭배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하등 쓸모없는 정신나간 말의 엮음에 지나지 않으며, 현실을 굳세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비해서 훨씬 비루하고 얄팍하며 어쩔때는 역겨울만큼 허위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트리스탄에서의 슈피넬의 행태가 이 부분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중 슈피넬의 말은 확실히 아름답고 예술적인 형용들로 넘쳐나지만 그가 인생을 살아가는 비겁한 방식은 어떤 역겨움을 일으키니까.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했지만 마지막으로 나에게 이 토마스 만의 작품들을 추천하냐고하면 글쎄.

 

결론부터 말하자면 추천하지 않는다.

아니 누가 본다고 하면 뜯어 말리고 싶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여타 고전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일단 읽기 어려운 글이라는 게 첫번째다.

 

먼저 묘사가 지나치게 많다. 상황 묘사와 인물 묘사 감정 묘사...

 

500페이지 중 거의 400페이지가 거의 이 묘사들로 점철되어 있다.

 

물론 이것들이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들의 특징이나 심정을 나타내주는 것이지만,

 

문제는 우리가 독일의 생활 양식을 전혀 모른다는데에 있다.

 

공감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같은 문화권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는 귀부인이 왜 커프스를 그다지도 정리하는지, 왜 손톱과 손등을 잘 보여주기 위해 가지런히 손을 모으는 지,

 

영애가 왜 하인들을 뒤에 앉혀놓고 마차를 모는지에 대해서 전혀 공감할 수 없다.

 

우리 문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한국 고전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공감이라도 가겠지만 솔직히 말해 한국 고전은 질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너무 많다.

 

질이라고 할까 글의 세공 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이렇듯 고전이 읽기 어려운 이유는 현대적인 감성의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어도 흔히 보던 것들이 아니며 인물들의 사고방식이나 생활 양식 전부 예전 것이다.

 

따라서 힘들게 억지로 읽는다고 해서 공감이 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추천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이 예술가 기질, 어릿광대 기질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추천한다.

 

아마 읽는 동안 공감 가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양식이 바뀌어도 결국 우리가 같은 종이라는 것은 변함 없으니까.

 

 

그래서 토마스 만 단편선 한줄평

"예술가와 소시민, 양 쪽 모두에게 사랑 받을 수 없는 불우한 어릿광대의 일생"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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