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통치 당시 소련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작가 본인이 8년 동안 투옥 생활을 해서인지 주인공 '슈호프'가 보내는 수용소에서의 하루일과가 정말 눈 앞에 그대로 그려질 정도로 생생하게 표현돼있다.
생선 가시뿐인 멀건 죽을 더 처먹겠다고 그릇을 핥거나, 그걸 또 훔쳐 먹겠다고 옆에서 굶주린 늑대처럼 기웃대는 놈들.
이백그램에서 조금 덜하고 더하고 하는 빵을 침대 안에 숨겨 놓고 누가 훔쳐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
남이 피던 담배의 마지막 한 입을 구걸하거나하는 아주 사소하고 비루하고 저열한 생활상이 펼쳐진다.
이런 묘사에서 여기서 작가의 기량이 드러난다.
작가는 이 모든 비참함을 아주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그런 서술들이 오히려 비참함을 더 강조하게 만든다.
그래, 아재 개그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들었을 당시에는 썰렁하지만 자려고 누웠을 때 그 담담한 개그를 떠올리면 입꼬리가 스윽 올라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작가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은 소설에 생명을 불어 넣어준다.
카잔차키스의 조르바처럼 본인의 실제적인 경험이 토대가 되니 묘사나 상황이 그대로 그려진다는 점.
남자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상황에서의 심리 묘사를 세세하게 잘 풀어냈다는 점 등이 그렇다.
그리고 이렇게 칭찬을 남발한 것은 사실 이어질 비평을 하기 위해서다.
*
비평을 하기에 앞서 내 생각에 고전명작이라는 것은 두 가지 부류가 있다는 것부터 말해야겠다.
첫째로 너무도 잘 다듬어진, 그러니까 문학을 위한 문학처럼 지극히 유미주의적인 작품이 있다.
이전에 리뷰 했던 토마스만의 작품들이 그런 종류다.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어떤 문장을 봐도 흠이 없다.
전체적인 라인을 봐도 흠이 없다. 작가가 한 작품에 얼마나 혼을 쏟았는지 여실히 보이는 작품들이다.
이런 작품들은 보통 내면이나 주변 묘사에 아주 치중하는 작품들이 많다.
둘째로 시대상을 잘 나타낸 작품들이 있다.
예를 들어 파솔리니의 폭력적인 삶이나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리고 나는 이 두번째 경우에서 다시 세분화를 하고 싶다.
ㄱ. 작품성은 떨어지지만 시대상을 잘 나타낸 작품
ㄴ. 작품성도 훌륭한데다 시대상까지 잘 표현한 작품.
무슨 말을 하고 싶냐면 ㄴ의 경우에는 당연히 명작 반열에 올라도 좋겠지만...
내 생각에 데니소비치의 '수용소의 하루'는 ㄱ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더불어 흔히 고전 명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들 중에 ㄱ같은 경우가 아주 많다는 것.
작가의 필력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하나를 꼽자면 이 작품의 시점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어차피 현대 소설에서도 시점에 대한 경계는 거의 다 허물어져있으니까 어떤 시점을 취하고 있는지 자체는 크게 문제 삼지 않겠다.
다만 가독성의 문제라고 할까.
주인공을 조명하는 부분에서 난데없이 조연의 독백을 서술하거나 하는 장면들은 상당히 몰입을 깨는 요소였다.
다음으로 얘기할 것은 번역이다.
사람들이 작품성을 따질 때 번역에 얼마나 비중을 두는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타 문화권의 이야기를 다룰 때에는 번역가가 곧 작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건 철학 카테고리에서도 쓰겠지만 어찌됐든 읽는 사람은 작가에게 얘기를 듣는 것이 아닌 텍스트를 보는 것이다.
독자는 서술에 대해 어떤 비언어적 표현도 제공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번역가가 어떤 단어를 차용했는지에 따라서 소설의 전반적인 인상이 완전히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고전을 읽을 때 드는 생각이지만 번역가들은 굉장히 불친절하다.
예를 들어서 한국 소설의 한 장면에서 어색하고 미묘한 관계의 남녀가 밥을 먹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치자.
만약 식사 도중 남자가 깻잎을 떼기 어려워하는 여자를 도와주는 장면이 있다면,
외국인들은 그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내가 고깝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 식으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불친절이다.
물론 번역가들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한 문장 한 문장을 다듬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오히려 내용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사실, 스스로 당연히 알고 있는 것을 남이 모른다고 상정하는 것은 꽤 어렵기도 하다.
예를 들어 사람이 밥을 먹는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글의 도중에 식사 장면이 있다면, 그 밑에 '이들은 사람이라 밥을 먹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밥을 먹는다.'는 식의 주석을 달기가 망설여진다는 것.
뭐, 실제 번역가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주석을 많이 다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교과서나 비문학 독해 지문 혹은 전문 서적이 아니다.
즉, 독자에게 이해 받고 공감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당연히 사람은 경험하지 않은 것을 선험적으로 알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문화권에 대한 얘기는 충분한 주석을 달아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물론 번역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주석이 오히려 몰입을 해친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 말이 맞다.
아무튼 영화나 소설이나 일단 관객은 속을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렇다면 세계관이나 문화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더 몰입하기 좋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슈호프의 하루 일과 중 가장 떠오르는 장면이라면 역시 현장에서 일하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벽돌을 쌓는 작업 과정에서 아마 육체 노동을 해 본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장면들이 나온다.
서로 비참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정말 별 것도 아닌 노동에 심취한 모습들이 나오는데,
그것이 오히려 비참한 상황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장치로 작용한다.
사실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회사에가고 정해진 시간에 집으로 들어와 취침하니까.
지금 거나하게 취했으니 여기서 포스팅 끝내겠다.
결론은 전체적으로 재밌는 소설이었다.
참고로 재밌다는 말만큼 글쓴이에게 행복을 주는 리뷰는 없다.
왜냐? 내가 글을 쓰니까 알겠다. 예전에는 몰랐다.
그러니까 극진한 칭찬이다.
한줄 평
이반 데니소비치 - 수용소의 하루 ★★★☆☆
"존엄함이라는 것은 가장 비참한 상황에 놓여야만 그제야 가까스로 드러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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