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말하자면 나는 어떤 작품을 볼 때 그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를 조금도 보지 않는다.
이건 내게 있어서 일종의 의식 같이 이루어지는 행위다.
정말로 실수로라도 내용을 보게 되거나, 인물 소개 같은 걸 보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회피한다.
더불어 작화도 보지 않고, 감독이나 작가도 보지 않고, 제목에도 거의 신경을 안쓴다.
(다만 제목의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눈에 띄는 거라 신경이 쓰이긴 한다.)
물론 이유가 있다. 애초에 이유 없는 행동이 어디 있을까.
나는 일상 속에 찾아오는 우연한 행복처럼 창작물들을 대하고 싶다.
작가, 작화가, 감독의 유명세나, 특히 평론가들의 평론을 보는 순간 선입견이 생겨버린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미 다른 사람의 관념이 덮여버린 순간 보기가 싫어진다.
다 본 후에는 상관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보기 전에는 절-대로 안된다.
혹여 '나는 그런 평론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관점으로 작품을 대할 수 있어!' 라고 생각하는 척척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전부 착각이다. 선입견은 무의식이다. 절대 통제할 수 없다.
아무튼 내 신념에 따라 바이올렛 에버가든의 경우에도 그러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이미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봐버렸다.
모 인터넷 방송을 보다가 인물 소개를 잠깐 들어버렸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내가 예상한 내용은 아니었다.
사실 기계+소녀+군인 이라는 인물 소개를 듣고난 후에 나는 최종병기 그녀 같은 스토리를 예상했다.
다행히 완전 빗나갔다.
기계 소녀 군인 조합은 맞았지만 한 소녀가 사랑의 의미를 배워가는 이야기였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잔잔한 힐링물이다.
음... 사실 힐링물도 여러 종류가 있다.
억지로 신파를 벌여 눈물 콧물을 쥐어 짜내거나, 감동을 이끌어내는 힐링물.
초반부터 잘 짜여진 빌드업으로 후반에 말도 안되는 큰 감동을 주는 힐링물.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다루는 일상 힐링물.
그 외에도 음식 힐링물, 이세계 힐링물, 하렘 힐링물 등등...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굳이 따지자면 일상물과 빌드업의 중간 쯤이다.
그래서 자극적인 내용을 좋아하시는 척척이들은 아마 지루하다며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스토리 자체는 진부한 편이다.
기계적인 소녀, 살인 밖에 모르는 소녀, 혹은 안드로이드가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는 얘기야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누누이 말했듯 스토리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재밌게 풀어나가는지가 중요하다.
여기선 잘 풀어간다.
빌드업도 착실히 하고 있다.
초반에는 목석 같았던 바이올렛쨩이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인간다워지는, 감정에 휘둘리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그리고 작화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애니, 작화 퀄리티가 상당하다.
처음에 작화를 보지 않는다고 한건 작품을 고를 때의 얘기다.
고른 후라면 당연히 작화가 뛰어난 편이 좋다.
애초에 애니메이션은 종합 예술이다.
플롯과 스토리, 등장인물, 개연성, OST, 배경음악, 음향 등등 모든 걸 다 따져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작화도 작품성에 영향을 준다.
왜냐? 애니메이션의 본질은 이어붙인 그림이니까. 당연한 얘기다.
아무튼 이 작품의 작화는 뛰어나다.
그래서 웬만해선 찾아보지 않는데 찾아봤다.
원작 라이트노벨의 삽화가는 타카세 아키코.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의 작화라고 생각했는데...
아! 「목소리의 형태」 극장판 원화를 담당하신 분이었다. 왠지 익숙하다 싶었다.
참고로 목소리의 형태도 재밌게 봤다. 이런 류의 스토리에 참 잘 어울리는 그림체인듯.
애니는 극후반부를 제외하면 시종일관 담담하고 잔잔하고 조용하게 흘러간다.
특히 좋았던 건 9화였나 10화였나 아이의 성장 에피소드.
이건 자동 수기 인형이라는 참신한 소재에서만 써먹을 수 있는 스토리였다. 감동적이기도 했고.
하지만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화는 따로 있다.
스샷 첨부한다.
바이올렛이 처음으로 눈물 흘리는 화다.
아마 저 남자는 작가의 분신이 아닐까 싶다.
글을 쓰는 입장으로써 지극히 공감가는 스토리다.
그래서 작가에게 최고의 칭찬 한 마디 남긴다.
재밌게봤다.
다만 내 기준에서 보자면 명작의 반열에 올리기엔 좀 부족하다.
힐링물은 보통 목적이 뚜렷하다.
당연히 사람들에게 힐링을 주는 게 목적이다.
근데 힐링을 주면서도 재밌어야 한다.
힐링물의 단점은 지루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몰입감이 중요하다.
옴니버스는 장단점이 뚜렷하다. 빌드업도 어렵고, 몰입감도 매 회마다 떨어진다는 점.
바에 역시 루즈한 부분이 없지 않다.
애초에 쿄애니는 힐링물에 맞지 않는다는 느낌도 든다.
쿄애니는 발랄한 학원물이나 액션물을 워낙 잘 만드니까.
그래도 추천한다.
무료한 날을 보내고, 인생이 허무해진다고 느낄 때, 선선한 오후에 보기 좋은 옴니버스.
리뷰 마친다.
끗-
총점 ★★★☆☆
한줄 평
근데 이거 출장 가서 집안일도 해주고, 밥도 해주고... 이거 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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