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란 없다.
이전 포스팅(https://gongja.tistory.com/17)에서 나는 헤라클레이토스가 만물의 근원을 '변화'로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소개할 파르메니데스는 그와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변화'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포스팅은 아마 조금 복잡하고 형이상학적인 개념을 다룰 것이라 머리가 아픈 분들이 속출할 수도 있다.
참고로 형이상학이란 감각적으로 세계를 분석하는 것이 아닌 순수한 논리적 사유로...
...집어 치우고 그냥 논리적이라는 말로 치환해서 이해하자.
형이상학 = 논리적인 것 or 이성적인 것 or 일상 언어에서는 추상적인 것이라고 해도 뭐라할 사람 아무도 없다.
사실 있을수도 있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진짜 철학 전공자를 만나서 내 블로그를 보여주며 깝치면 안된다.
아무튼 내가 이해한 바를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은 해보겠다.
파르메니데스 (BC 510~450)
현대 사회는 선요약 후설명에 미쳐있는 시대다.
그래서 나는 먼저 그의 주요사상 세 가지부터 설명하려고 한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다.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시라. (님들 댓글점;)
그의 큰 세 가지 주장이란 이렇다.
1.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 "있음은 있고 없음은 없다."
2. 일자(the one, 참고로 가수 더원 아님).
3. 네 감각을 믿지 말라. 현실은 착각이다.
?????
이게 무슨 소린가 싶다. 차분히 설명해보겠다.
우선 1번에 대해서 아라보자. araboja.
얼핏 보기에는 당연한 말처럼 보인다.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로다. (줄여서 물물산산.)와 비슷한 말인가싶다.
결론만 말하자면 아니다.
지금부터 파고 들어가보자.
일단 "있는 것은 있다"는 말은 동어반복이다.
무슨 말이냐면 사과는 사과다. 담배는 담배다. 라는 말과 같은 구조라는 말이다.
이 얘기를 왜 했느냐?
즉 A=A와 같은 말이니 일단 이 명제는 틀릴 수가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논리학의 동일률, 항진명제다. 항상 맞는 명제라는 말인데 굳이 알 필요는 없다.)
그럼 마찬가지로 '없는 것은 없다'는 말도 당연히 참이다.
그런데 이 양반이 왜 이런 당연한 말을 했을까?
바로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서다.
파르메니데스는 위 두 개의 참인 명제들에서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이 될 수 있는지 알고싶어 했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 "있음은 있고 없음은 없다."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이 될 수 있는가?
이건 중요한 문제다.
아마 머리가 잽싸게 돌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벌써부터 어떤 의문을 제시할지도 모른다.
화학에서 보자면 흔히 어떤 A와 B가 결합해서 완전히 다른 C라는 물질이 된다.
또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완전히 다른 수정란이 된다거나.
이런 예시를 생각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위 예시들은 「완전히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A와 B라는 화학물질이 존재했고, 정자와 난자가 존재했다.
어떻게 결합하고 무슨 반응을 일으켰는지는 알 바 아니다.
아무튼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때문에 저 명제를 반박할 예시로는 적절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럼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빅뱅은 어떨까?
아무것도 없는 한 점에서 한 순간에 온 우주를 만든 빅뱅 말이다.
(물론 빅뱅 이전에 암흑물질이 있다던가 하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일단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빅뱅은 변화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변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질문만 던질 뿐이다. 해답은 각자 생각하길 바란다...
라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으니 대충 설명해보겠다.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우리는 없는 것을 사유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만약 실제로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의 변화가 가능하다면 우리는 반드시 없는 것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야 한다.
예시로 들었던 빅뱅을 보자.
빅뱅조차도 '빅뱅'이라는 개념에 대해 일단 우리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는 그런 생각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없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설명을 조금 더 해보자면.
앞에 말한 없는 것이라는 건 정말로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없는 것이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실체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실체가 없는 것 - 유니콘 , 세이렌 , 페가수스 , 여자친구....)
아예 실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것은 언어로 설명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글을 적는 순간 그것은 실재해버리기 때문이다.
'2ㅡ5ㅑ후ㅛㄷㅅ31' 같은 단어를 적어도 마찬가지다.
이 단어가 뭘 지칭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 단어는 실재하고 있다.
다시 간단한 예를 들어 보겠다.
당신은 서울우유가 냉장고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치자.
그럼 냉장고 안을 보지 않아도 그 안에 있는 서울우유를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냉장고에 서울우유가 실제로 없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서울우유가 들어 있는 모습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우유가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떨까.
그럼 당신은 서울우유의 생김새와 맛과 냄새와 로고의 모양을 상상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그것이 냉장고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은 더더욱 상상할 수 없다.
당연하다 없는 것은 상상하지 못하니까.
그리고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는 말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있는 것이다. 라는 말과 논리적으로 같다.
논리적인 대우관계를 생각해도 좋다.
없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는 말에 동의했다면 이제 이 개념을 가지고 다시 위로 돌아가보자
이제 우리는 1.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 "있음은 있고 없음은 없다." 라는 말을 파악했다.
여기까지 잘 따라왔다면 여기서 조금만 더 생각을 확장해보자.
없는 것은 없으므로 변화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없는 것이 있는 것이 될 수 없고, 있는 것이 없는 것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있는 것은 없는 것에서 창조된 것이 아닌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원래부터 세상에 존재한다는 말은 무엇인가? 그것은 '완전한 것'이고 '하나의 것'이라는 의미이다.
일자(the one).
자 조금 헷갈릴수도 있지만 얘기를 계속해보겠다.
만약 있는 것이 여러 개라고 하자.
그렇다면 있는 것들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구분 지을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니까.
정확한 예시는 아니지만 테이블 위의 사과를 떠올려보자.
만약 사과가 10cm 정도 떨어져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사과 두 개 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사과가 서로 만나서 붙어 버리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하나라고 해야할 것이다.
왜? 사과를 구분 짓는 것은 사과 사이의 '빈 공간'이니까.
하지만 파르메니데스의 주장. "없는 것은 없다."에 따르면 사과 사이에 그런 아무것도 없는 공간은 없다.
왜 없냐고? 없는 건 없으니까. (이해가 가지 않으면 처음부터...)
즉 있는 것들 사이에 없는 공간은 당연히 없으니 서로 독립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파르메니데스는 바로 이 하나의 있는 것을 2. 일자(the one. 가수아님)라고 했다는 거시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생각을 확장시켜보자.
네 감각을 믿지 말라. 현실은 착각이다.
이런 논증에 따르면, 그러니까 변화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직관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생겨버린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일상 생활에서 이런 것들은 명백하게 변화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현상들을 파르메니데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커피가 식으려면 우선 뜨거운 커피가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앞에서 이미 동의했듯이 있는 것은 없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위의 상황에서 커피는 식는 것이 아니며 꽃병 속의 꽃도 시드는 것이 아니다.
직관으로 언뜻 이해가 가지 않지만 논리적으로는(형이상학적으로는) 상황을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위의 내용 정도만 완벽히 이해하고 누군가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면...
철학사에서의 파르메니데스
어쨌든 카테고리가 철학사니까.
첫 번째로 철학사적으로 파르메니데스의 업적은 존재론과 인식론을 처음 다루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 받는다.
(철학의 큰 갈래 존재론과 인식론, 그리고 미학에 대해서는 다른 카테고리에서 따로 다루겠음 ㅠㅠ)
그리고 두 번째.
여기까지 전부 꼼꼼히 읽었다면 아마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라? 이성으로 세상을 파악하고 감각은 착각이다... 이거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
그렇다 여러분들 모두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봤을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다.
서양 철학사 2500년을 지배한 이데아론이 만들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파르메니데스인 것이다.
(즉 이데아는 피타고라스의 이원론적 세계관 + 파르메니데스의 사상 +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 합친 것)
솔직히 더 할 말이 많지만 여기까지 하자.
알쓸신잡 or 일기
여러 이유가 많겠지만...
(앞자리가 막 3으로 바뀐 여성분들은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또 육체적인 부분도 있지만 사실 나는 그런 것보다 정신적인 부분들에 훨씬 큰 아쉬움을 느낀다.
물론 지금도 끊임없이 사유하곤 하지만 예전처럼 머리가 팽팽 돌아가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내가 이 나이를 먹고서야 부랴부랴 블로그 포스팅을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조금이라도 더 뇌가 젊을 때 사유한 것들을 글로 남겨놓고 싶어서... ㅠㅠ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늙으려면 젊은 우리가 먼저 없어져야 한다.
없어졌다고 생각하지만 단지 거기에, 어떤 시간 속에 참다운 존재로서 계속 존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했던 기발한 생각들, 가장 찬란한 순간들, 아름다웠던 기억들 역시 어느 지점에 그대로 존재한다.
그러니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너 많이 늙었구나." 라고 하면 이제 당당하게 말해주자.
"파르메니데스에 의하면 변화는 없다. 따라서 내가 늙어 보이는 것은 너의 착각이다!"
물론 관계가 서먹해지는 지름길이다 실천하지는 말자
생로병사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
어차피 다 허상이니까.
3줄 요약
1. 파르메니데스의 명언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 "감각에 속지 말라." (요약 불가능)
2. 플라톤의 사상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플라톤은 그 사상으로 서양 철학사를 2500년간 지배했다~
3. 따라서 그는 서양 철학의 기초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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