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둥- 오늘 리뷰는 늑대아이다.
이전에 비슷한 포스팅을 한 것 같은데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늑대아이 리뷰 들어가겠다.
먼저 말하자면 다섯 번 봤고, 다섯 번 울었다.
그리고 영화관에서 보지 못했던 영화 중 가장 후회되는 영화기도 하다.
아 나는 왜 이 때 집구석에 처박혀 있었을까. 지금도 후회된다.
재개봉... 제발...
나는 눈물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생리적인 눈물이 있다.
뾰족한 것에 찔렸을 때, 모서리에 발가락을 찧었을 때,
그리고 아주 신파적인 영화, 예컨데 거리에서 나물을 파는 할머니를 다루는 영화 같은 것을 보았을 때,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오고야 마는 그런 눈물이 있다.
반면 이것보다는 약간 더 짜고, 조금 더 짙은 종류의 눈물이 있다.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 나오는 눈물이 그것이다.
그리고 내가 늑대아이를 보고 흘렸던 다섯 번의 눈물 모두 후자의 눈물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사랑에 대해 담고 있다.
남편에 대한 사랑과 자식에 대한 사랑이다.
주인공은 그 모든 것을 사랑하기에 끝없이 헌신한다.
본인을 돌보지 않아도 행복하다. 단지 사랑하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다. 그게 사랑의 본질이다.
여담이지만 주인공 하나의 성우인 미야자키 아오이는 당시 27세에 하나 역을 맡았다.
당시 결혼도 하지 않았던 성우가 두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역할을 맡은 것이다.
그리고 멋지게 해냈다. 어떻게 이다지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 해냈다.
감독 역시 눈여겨 봤는지 차기작인 괴물의 아이에서도 주연을 맡겼다.
이렇게 눈부신 작품을 감상할 때면 자연스레 성우라는 직업의 대단함에 대해서도 느끼게 된다.
주인장은 INTP다. 남 앞에 서기가 부담스럽다.
그래서 보통 글로 소통하는 편이다. 지금도 그러고 있고.
그러다가 문득 배우나 성우들이 얼굴을 맞대고 연기하는 걸 보고 있으면 신기하다.
어떻게 감정을 타인 앞에서 연기할 수 있을까. 나는 수줍어서 도저히 못할 것 같다.
이 감독이나, 애니메이션 업계에 대해 얘기할 건 차고 넘치지만 대부분 생략하겠다.
그래도 역시 작화에 대해선 한 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 계의 삼대 거장은 차례로 미야자키 하야오, 신카이 마코토, 호소다 마모루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뒷세대인 호소다 마모루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러니까 지브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실제로 하나가 시골에 가서 허름한 집을 청소하는 장면은 토로로를 떠올리게 한다.
뭐 그것보다도 내가 유사성을 느낀 건 아무래도 캐릭터나 세계관이지만, 세계관에 대해선 다음에 다루겠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캐릭터들은 눈 사이의 간격이 꽤 멀다.
지브리에서 꼭, 반드시 등장하는 순진무구한 소녀들의 경우처럼 말이다.
???? 갑자기 왜 미간 넓이를 얘기하냐고 할 수 있는데 이건 꽤 중요하다.
눈은 그야말로 마음의 창이다.
먼저, 애니메이션에서는 흔히 '데포르메'라는 기법이 쓰인다.
쉽게 설명하자면 '의도적인 왜곡'이다.
간단한 예시로 우리가 흔히 아는 일명 '눈깔 괴물'들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상상하면 된다.
이건 너무 크다 싶지만 아무튼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은 눈이 크다.
비단 일본 애니 뿐만 아니라 디즈니나 픽사, 혹은 어떤 애니메이션을 봐도 현실의 인간보다 눈이 크다.
왜냐면 눈은 마음의 창이고, 눈이 클수록 캐릭터의 감정을 드러내기 쉬워서 그렇다.
직접 그림을 그려서 설명하고 싶지만 거기까지 하기엔 너무 귀찮다.
이게 왠 허공에 뜬 구름 잡는, 사이비 같은 소리냐 할 수도 있지만 이건 사실이다.
한번 직접 상상해보라.
당신이 타인의 감정을 얼굴에서 유추해 낸다고 했을 때 어디를 볼 것 같은가.
뺨? 귀? 코? 이마? 머리카락? 당연히 눈과 입 밖에 없다.
그리고 다시 강조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감정을 잘 드러내는 건 눈이다.
벌린 입이 환호하고 있는지, 화를 내고 있는지, 절규를 내뱉고 있는지 결정하는 건 눈이다.
현실 세계에서야 수 많은 상황적 자료,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 덕분에 화자의 의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의 도움을 온전히 받을 수 없는 창작물 속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이 눈을 크게 그려야 하는 것이다.
얘기가 좀 엇나갔다. 헤헤.
아무튼 호소다 마모루의 캐릭터들도 미간 사이가 꽤 넓다.
이게 참 애매한 부분인데.
절대 관상을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현실에서도 미간 사이가 넓으면 보통 멍청한 인상을 준다.
분명 그런 인상을 받는데 설명하긴 애매하다.
아마 파충류나 조류가 자연스레 연상되어서 그런게 아닐까 하는, 아주 개인적인 추측을 해본 적도 있다.
아무튼 이 미간 사이의 거리가 그래서 중요하다.
멍청해 보인다는 것과 순박해 보인다는 것, 순진해 보인다는 것은 정말로 한끗차이다.
미야자키나 호소다 감독은 이 적절한 선을 잘 지킨다.
혹시 이 포스팅을 보고난 후 두 감독의 작품을 한 번 유의깊게 보길 바란다.
작중 가장 순진하고, 가장 순박하며, 가장 처녀적인 인물일수록 미간 사이가 넓다.
그리고 하나 더, 이 감독의 작화엔 특이한 점이 있다.
전작에서 훨씬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자세히 보면 인물의 명암이 없다.
감독 본인이 말하길 "실제 현실에서 사람의 얼굴은 그리 명암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이것도 그렇다. 당장 인스타만 좀 둘러봐도 특별한 조명이 아닌 이상 눈에 띄는 명암이 없다.
배경 역시 이런 철학에 기반한 건지 극사실주의라고 불러도 될 만큼 현실적이다.
특히 후속작 괴물의 아이에서 이런 작화가 도드라진다.
확실히 에니메이터의 입장에서 보자면, 작화에 명암을 넣는 일은 시간을 굉장히 잡아먹는 일이다.
이 과정을 과감히 생략하고 그 에너지를 애니메이팅에 투자하는 방식도 좋아 보인다.
그래서인지 호소다 마모루의 작품을 보면 역동적이고, 소소한 부분까지 터치가 닿아있다.
사실 늑대아이는 비단 늑대와 인간 여자 사이에서 나온, 그러니까 늑대 아이들만을 얘기하고 있지는 않다.
감독이 실제로 그 얘기만 하고 싶었더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예술이란 해석에 더 큰 의미가 있는 거니까.
이 영화에서 나는 순결하고 고귀하기까지한 모성애와 부성애,
언젠가 떠나버릴 아이를 품는 어머니와, 언젠가 떠나버릴 품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성장기,
쉼없이 선택의 기로에서 강요받는 나약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방식을 보았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사회에도, 아니 우리들의 바로 옆에도 이런 늑대아이들이 살아가고 있진 않을까.
불안한 예감을 전하는 빗속에서 하나는 남편을 발견했다.
발견했지만 얘기하지 못했다.
늑대아이를 가진, 늑대와 결혼한 자신은 사회적 약자였기 때문이다.
약자의 정의는 미묘하지만 약자라서 무언가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점은 분명히 있다.
나는 비오는 날, 다리 위에서 주저 앉아 펑펑 우는 하나에게 바로 그런 모습을 봤다.
이 작품은 선택의 연속이다. 영화에서 하나는 끊임없는 선택의 순간과 마주선다.
도강하는 남자를 도와줄지 말지.
인간인 자신이 늑대를 사랑해도 되는지. 혹은 그와 결혼해도 되는지.
자식을 인간들의 손에 맡겨도 될지. 도시에서 사는 것과 시골에서 사는 것.
인간으로서 사는 것과 늑대로써 사는 것.
성장한 자녀들을 보내줘야 하는지 혹은 품어야 하는지.
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선택이 나오며 의도적으로 여러 장면에서 연출을 통해 드러내기도 한다.
이 모든 선택에 계속해서 부딪히지만 당연히 하나는 정답을 알지 못한다.
늑대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감성적인 것들을 기피하는 성향이 있고, 그래서 싫어하는 문구가 있다.
"나도 엄마는 처음이라..." 같은 말이다.
하지만 역시 공감을 얻는 말에는 대부분 진리가 숨어 있다.
모든 인간은 단 한번만 생을 구가할 수 있다.
이 대전제를 바탕으로 누군가는 한 번 사는 인생 막 살자고 마음 먹기도 하며,
누군가는 기왕 한 번 사는 거 폼나게 살아보자고 생각하기도 한다.
삶의 방식이야 다르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한 번 살기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부분은 있다.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선택은 한 번 정한 이상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것.
단지 그것을 책임질 용기만 있다면 당당하게 어느 쪽을 선택해도 된다는 것.
그러니까 두려워 하지 말라.
하나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는 남편과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는 일이란 그 자체로 사랑을 돋구어준다.
그 일이 힘들거나 고되거나 더럽다는 것은 사소한 문제다. 그러니 후회할 이유가 없다.
아메 얘기를 좀 하겠다.
일본어를 아시는 분들은 금방 아메라는 단어가 雨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이건 개인적인 견해지만 아메는 실제로 비가 오는 날 하나의 품에서 완전히 떠난다.
자신의 인생 방향을 빗속에서 정했다.
감독이 이 장면을 생각해서 이름을 지었다면, 혹은 반대로 이름으로 이 장면을 구성했다면 가히 천재적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하나 더 얘기하자면 후기를 보면 아메에게 답답함을 느낀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냐는 등(근데 사실 사람 아님)의 얘기들이다.
불행한 얘기지만 아메에겐 적절한 롤모델이 없었다.
프로이트의 견해에 따르면 아버지의 존재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그 경우라도 분명 아버지는 가장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는 롤모델이다.
영화의 결말은 어떻게 보면 비극이고, 어떻게 보면 해피엔딩이지만 그래도 내 생각은 그렇다.
아메에게 아버지가 있었다면, 그 무수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아메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개인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은 이런 표현을 참 잘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한 여름의 쨍- 한 뙤약 아래의 풍경이나, 고즈넉하고 비밀스러운 정원.
비 갠 뒤 약간 쓸쓸함이 느껴지는 거리의 모습, 맑은 하늘에 형용할 수 없는 모양으로 피어난 뭉게구름 같은 것들.
아마 애니를 자주 보는 분들이면 주인장이 무슨 말을 하고싶은지 알 거라 생각한다.
늑대아이 역시 이런 배경 묘사가 아주 뛰어나다. 에니메이팅은 말할 것도 없고.
말하는 식으로 적다 보니 포스팅이 꽤 길어졌다.
무려 3부작에, 포스팅마다 글도 많이 썼다.
사실 할 얘기는 더 많다. 주인장이 애니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적지 않겠다.
앞으로 할 포스팅들에 조금씩 조금씩 풀어나가겠당.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주인공의 인생을 하나로 요약하는 대사로 마무리 한다.
늑대아이 ★★★★★
한줄 평
헌신적인 것은 사실 진정한 사랑의 필요 조건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애초에 헌신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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