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리뷰는 한국 영화입니다.
제 리뷰 스타일을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스토리를 줄줄 읊는 걸 싫어합니다.
최대한 메타인지를 발휘해서 왜 싫어하는 지 생각해봤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굳이 이유를 대자면...
스토리를 알고 보면 길거리에 핀 네잎클로버를 발견했을 때처럼 우연한 재미 같은 것이 반감되어서랄까요.
뭐 사견입니다. 리뷰의 본질은 사실 스토리 요약일지도 모릅니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스토리 요약과 등장인물 소개는 메뉴판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밥집 앞에 있는 커다란 입식 메뉴판 같은 것이고, 손님들은 그걸 보고 들어온다고 말입니다.
실제로 그럴듯한 비유일지도 모르겠지만 전 오마카세를 더 좋아합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오는 갑작스러운 감동 같은 것에 환장합니다.
그래서 줄거리를 읊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목과 포스터만 봐도 대충 내용이 예상이 갑니다.
예, 추억과 향수를 불러 일으키네요,
영화는 그대로 흘러갑니다. 어떤 기막힌 반전도 장대한 서사도 없었습니다.
이렇다할 박진감 있는 것도 아니고, 플롯도 단순하며, 시종일관 잔잔한 인상을 주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흡입력이 있습니다
특히 박승준 배우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포인트입니다.
다른 배우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는 연기력이었습니다.
음... 이건 잡설인데 한국 영화는 리뷰하기가 좀 어렵군요.
저는 편하게 말하고 싶은데요. 이놈 저놈, 혹은 이자식 저자식 하면서요.
하지만 한국 영화라서 그러기가 좀 어렵네요.
아무튼 배우들은 저와 같은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외국 배우들도 아니고, 혹은 역사의 뒤안길에 있는 분들도 아니니 설령 마음에 안들었다 해도 이새끼 저새끼 하며 까내리기가 어렵습니다.
혹시라도, 만약에라도 배우분들이 에고서치 도중 제 글을 볼수도 있잖습니까?
예? 기껏해야 하루 20명 방문하는 블로그를 볼 일은 없다구요?
아뇨,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보이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무조건 에고 서치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속에 던져진 나를 발견하고, 거기서 존재감을 찾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영화에서 중요한 부분인 배우들이나,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 평가하기 망설여집니다.
뭐 제가 저명한 평론가도 아니니 배우들이 제 의견에 신경쓸 것 같지는 않지만요.
그래도... 저도 나름 창작가 아니겠습니까?
저도 글을 씁니다. 심지어 현재도 수 많은 댓글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압니다.
독자들의 반응이 나쁘면, 비록 그 독자가 문학에 무지한 사람이라 해도 비평은 창작자의 가슴에 무조건 비수가 되어 박힙니다.
물론 그 비수가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만, 역시 사람인지라 날선 말에 상처를 입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저는 그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기 작품을 내지 않는 평론가는 비겁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비평받기 두려워서 자신의 작품을 내지 못하는 비평가들 말입니다.
아주 우수한 소비자라면 중간층 정도의 생산자는 충분히 될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잡설이 좀 길었습니다. 사실 많이 길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리뷰의 본질 아니겠습니까?
영화를 보면서 개인이 느낀 것들을 보는 것이지요. "아, 이 영화를 보고 저런 생각도 떠올릴 수 있구나" 하구요.
역시 사견입니다.
예, 영화는 성장을 그리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자면 앵글 속에 있는 옥주의 성장이지만 사실 인간의 성장이기도 합니다.
처음에 옥주는 동주가 모기장 안에서 함께 자는 걸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사라진 뒤에는 허락합니다.
처음에 옥주에게 동생의 춤은 자존심을 파는 비겁한 짓이었지만 장례식 장에선 동생의 춤을 보고 웃습니다.
처음에 옥주는 엄마의 선물을 받아 온 동생에게 화를 냅니다. 하지만 장례 이후 옥주는 엄마의 선물을 받아들입니다.
비단 옥주의 성장이 아니라 인간의 성장이라고 말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같은 인간이기에 어찌할 도리 없이 공감하고 마는 그런 성장의 단계들이 있습니다.
경험이 다르기에 장면에 대한 향수는 각자 다르지만, 인간이기에 느끼는 향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소한 공감과 성장 과정을 영화는 담담하게 풀어 냅니다.
영화 속에서 아버지는 밉고, 초라하고, 왜소하고, 비루하고, 벌레 같이 초라한 존재입니다.
바로 그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옥주는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런 인간들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습니다.
아마 이야기가 계속 됐다면 옥주는 아버지에 대한 시선도 완연히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아무래도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옥주 자전거 씬과, 후반부에 옥주의 눈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롱테이크로 찍은 씬이고, 사실 영화를 좀 봤다 하는 사람들에겐 익숙한 연출입니다.
하지만 익숙한 연출이라도 극중 인물이 처한 상황이 다르므로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 집니다.
예, 옥주는 아마 이때 절절히 느끼지 않았을까요.
인생은 언제나 부끄러움의 연속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옥주는 꽤나 양심적인 인물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우울하고 괴로워합니다.
제 세대는 아닙니다만 공감할 수 있습니다. 같은 인간이니까요.
그런데 마지막에 옥주는 왜 울었을까요.
아버지는 국이 짠 바람에 물을 더 넣어서 싱거워져버렸다고 말합니다.
예.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요.
옥주가 겪은 모든 일들은 사실 싱거운 일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만한 일이고 딱히 특별한 일도 아닙니다.
참고로 이 부분에서 최정운 배우님의 흐느끼는 연기가 좋았습니다.
펑펑, 엉엉 우는 게 아니라 꾹꾹 흑흑 우는 느낌을 잘 살린 것 같습니다. 물론 제 사견입니다.
사실 슬픔이란 당시에는 느끼기 어려운 감정입니다.
예, 거센 물살에 휩쓸린 사람이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정확히 인식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입니다.
시간이 좀 흐르고, 그 때의 내가 발버둥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물 한 가운데서 허우적대고 있었다는 사실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을 때에야 슬픔이 느껴지곤 합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좋은 영화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론 몰입도 잘 됐고, 향수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향수란 꼭 실질적인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면 그건 분명히 향수입니다.
장면은 중요치 않습니다. 아무튼 잘봤습니다. 윤단비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네요.
남매의 여름밤 ★★★☆
먼지 냄새 나는 낡은 앨범을 한장한장 뒤적여 보는 것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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